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던 날, 서울 근교 산행지로 유명한 경기도 의왕시의 모락산을 찾았습니다.
해발 385m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곳곳에 드러난 암릉의 트레일과 정상에서 펼쳐지는 시원한 전망 덕분에 많은 등산객들에게 사랑받는 곳입니다.
원래는 가장 대중적인 국기봉을 지나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는 코스를 계획했었어요.
하지만 막상 등산을 시작하니, 예상치 못한 장면들을 산길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남긴 흔적이었습니다.
올해 초 기록적인 폭설 때문인지 나무들이 산사면 곳곳에 쓰러져 있었고, 일부 등산로는 완전히 막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분명 봄이 찾아왔지만, 산은 여전히 겨울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원래 계획했던 길을 포기하고, 조심스럽게 우회로를 따라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 길은 조금 더 가팔랐고 사람도 드물었지만, 덕분에 더욱 고요하고 깊은 숲의 풍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어요.
단순히 '산을 오른다'는 목적을 넘어, 산과 대화하듯 걸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날의 기록을 사진과 함께 공유하려 합니다.
봄에 산을 찾았지만 겨울을 마주했던 날,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얻은 소소한 위로와 풍경들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모락산 - 겨울의 흔적을 만나다, 그러나 초록이 우거진 5월
모락산에 오른 건 따뜻한 5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숲길은 초록빛으로 온통 뒤덮였고, 햇살은 부드럽게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었어요.
나뭇가지마다 연둣빛을 지나 진한 녹색으로 짙어지고 있었고, 풀숲에는 이미 여름의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습니다.
분명 '한창 봄'이었죠.
그런데 산을 오르다 보니, 이상하게도 몇몇 구간에서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쓰러진 나무가 등산로를 가로막고 있거나, 길 자체가 온전히 지형에 묻혀 사라진 듯한 구간도 있었죠.
알고 보니 지난겨울 유례없는 폭설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눈은 사라졌지만, 겨울의 상처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던 거예요.
신록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뿌리째 뽑혀 누워있는 나무들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의 과정 중이었고, 등산객들은 그런 흔적을 피해 임시 우회로를 만들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미리 계획했던 코스는 막혀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풍경은 오히려 이 산행을 더욱 특별하고 기억에 남게 해 주었습니다.
모락산 속 조선 왕실의 흔적 - 임영대군 이구 묘역
우회로를 따라 걷다가 문득 한 표지판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임영대군 이구 묘역 및 사당'이라는 안내문을 보자, 등산 중 왕실의 흔적을 만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임영대군 이구(李俔, 1420~1469)**는 조선 3대 왕 태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이복형제입니다.
역사서에는 정치적 업적보다는 효성과 학문을 중시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어요.
대군의 신분이었지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조선 왕실의 깊은 뿌리를 보여주는 존재였습니다.
묘역은 모락산 중턱, 나무들에 둘러싸인 고요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옆에는 소박한 규모의 사당이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널찍한 돌계단과 단정한 제단, 그리고 낮지만 튼튼한 담장이 눈에 들어왔죠.
한 인물의 흔적이 이토록 조용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산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등산 중 이런 역사의 흔적을 만나는 건 늘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날은 특별히 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겨울의 마지막 숨결과 봄의 생명력이 교차하는 길 위에서, 고요히 잠든 조선 왕자의 흔적을 만나는 건 마치 또 다른 시간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역사는 반드시 박물관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연과 어우러져 조용히 살아 있는 흔적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곤 합니다.
이 구역을 지나며 느꼈던 특별한 감정—지나간 시간과 현재가 같은 공간에 공존한다는 실감—은 이 산행을 단순한 봄나들이가 아닌 작은 사색의 여정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산길 위의 숨 - 정자에 앉아 바라본 초록
임영대군 묘역을 지나 한참을 더 걸었을 무렵, 숲길 너머로 나무 지붕의 정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특별한 이름은 없었지만, 등산객들이 하나둘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저도 그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았습니다.
산행 중의 휴식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됩니다.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숲은 걷는 중에 보던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 소리, 식어가는 땀, 옆자리 등산객이 건네주는 물 한 모금의 소중함.
정자는 겉으로 보기엔 그저 지붕과 의자가 있는 단순한 공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곳으로 느껴졌습니다.
벽에는 이전에 다녀간 누군가가 남긴 짧은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걷다 보면 길이 된다."
처음엔 다소 과장된 말 같았지만, 이날의 산행과는 묘하게 잘 어울렸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코스는 막혔고, 저는 우회로를 선택했으며, 그러다 이런 쉼터를 만나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예정된 길보다 예상치 못한 멈춤에서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정자에서 잠시 바라본 숲은 그날 산행 중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었습니다. 줄곧 오르기만 했던 시간에, '멈춤'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새삼 깨달았던 순간이었죠.
모락산 둘레길 - 다시 돌아보고 싶은 산
처음엔 평범한 봄 등산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 적당히 땀을 흘리고 풍경을 즐기다 내려오면 그만일 거라 믿었죠.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길의 막힘과 우회, 뜻밖의 유적 발견, 평소엔 지나쳤을 쉼터에서의 오랜 휴식으로 이번 산행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겨울의 흔적 남은 푸른 숲,
왕실의 역사와 마주한 순간,
정자에 앉아 멈춘 숨,
그리고 가보지 못한 길이 선사한 새로운 풍경들.
모락산은 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매력을 지닌 산이었습니다.
높이는 낮았지만 깊이는 깊었고, 작아 보여도 풍요로웠어요.
이 산을 오르고 나서, 꼭 정상에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마도 등산은 인생과 닮아서, 때로는 길이 막히고 돌아가더라도 그 여정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다음에 모락산을 다시 찾게 된다면, 오늘 지나쳤던 길을 다시 걸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또 다른 계절의 모락산이 나를 부를지도 모르겠네요.
그날의 산,
그날의 길,
그날의 나에게 감사를 전하며 이번 산행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모락산 둘레길 산책 시 주의사항⚠️
1. 폭설 이후 쓰러진 나무
일부 코스는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통행이 어려운 구간이 있습니다.
특히 국기봉과 주능선 사이는 반드시 사전에 코스 정보를 확인하세요!
2. 이정표 없는 우회로 주의
우회로로 이동할 때는 이정표가 부족한 구간이 많으니 트랭글, 램블러 같은 GPS 앱을 켜놓는 것이 안전합니다.
3. 미끄러운 바위 구간
암릉 코스의 특성상 비 온 후나 낙엽이 많은 구간은 미끄러울 수 있습니다.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등산화 착용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4. 정자 및 쉼터 혼잡 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사이는 등산객이 가장 많은 시간대라 쉼터 자리 확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간단한 방석이나 휴대용 돗자리를 준비하면 좋습니다.
5. 임영대군 묘역 접근 시 예의
사당과 묘역은 조용히 관람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지만, 왕실 묘역인 만큼 경건한 자세로 간단한 묵례나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모락산 둘레길 주차 안내 🚗
모락산은 의왕 도심과 가깝고 주차 공간도 충분해서 등산객들에게 편리합니다.
다만 각 등산로마다 시작점이 다르므로, 주차 위치도 조금씩 다릅니다.
따라서 자신이 오를 코스에 맞는 주차장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 모락산 등산로 입구(국기봉 방면)
→ 의왕시 내손동 623 일대
→ 인근에 모락산 근린공원 공영주차장이 있어 주차 공간이 넉넉합니다.
다만 주말에는 차량이 많아 다소 혼잡할 수 있습니다.
● 계원예술대 방면 등산로
→ 의왕시 계원대학로 66
→ 학교 앞 상가와 골목길의 유료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 백운호수 방면에서 오르는 경우
→ 백운호수 공영주차장(의왕시 학의동 1034) 이용 가능
→ 이 코스는 거리상 조금 돌아가지만, 가볍게 산책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적합합니다.
📍 Tip: 네이버 지도에서 "모락산 주차장"을 검색하면 공영 및 사설 주차장 위치를 비교적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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